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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이길 능력을 주소서

LNCK 2016. 8. 7. 17:45

이 시대를 이길 능력을 주소서                 9:28~29            16.07.27출처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말씀했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나라를 걷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이, 정결한 의를 얻고

회개했기 때문에 주님의 피가 뿌려져서 양심의 정결함을 얻고,

그래서 자기 마음안에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증거는, 평강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기쁨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기쁨이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참 신자의 생활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살고 계시나요?

이런 분은, 그 얼굴이 '전도지'입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이, 신앙생활의 기초인데

그렇지 못하고, 뭔가 자기 삶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는데,

그건 죄에 묶여있는 죄의 종이란 뜻입니다.  

그렇지만 아들이 우리를 자유케 하시면, 우리 심령이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자유함이 아니라, 자꾸 뭔가 묶여 있습니다.

자기 영이 어떤 밧줄에 묶여 있듯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닌데, 뭔가 부자연스럽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이 원하는 것은, 성령충만함입니다.

기도할 때 정말 하나님께 깊이 다가가서,

그 충만한 은혜가운데 거하기를 다 원하시죠?

 

그런데 그러한 시간들이 우리에게 자주 있는게 아니라

보통은 답답함 가운데 눌려있고, 묶여 있고

가끔 기도의 정점에 도달하면서 어떤 충만함을 누리다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면, 뭔가 어둡고 묶이는 일이 다시 벌어집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그 자유함, 하나님의 나라를 걷는 그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부어져야 됩니다.

 

제가 지난 주에, 조용한 곳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거기서 느낀 게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영역(차원, 수준)이 있는 것 같아요.

 

본문에도 '영역'이 나옵니다.

제자들과 예수님, 똑같이 기도하고 똑같이 신앙생활 하는 것 같지만,

제자들의 신앙 차원/영역과,

예수님의 신앙 차원/영역은 분명히 다른 것이었어요.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쫓아내신 것을 보면,

그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침체된 그 영역 안에서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가 굉장히 약해져 있습니다.

 

바다를 봐도, 깊은 심연에서 돌아다니는 해양생물이 있고,

또 중간 깊이에서 다니는 해양생물이 있고,

해수면에서 사는 생물들이 있습니다.

영역/차원/깊이가 각각 다른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내가 지금 어떠한 영역 안에 있는가에 따라서

그 주님의 은혜를 누리느냐,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냥 답답함 가운데 있느냐가

정해지는 것 같아요.

 

제가 지난 주간에, 조용한 곳에 가서

하나님 앞에 좀 답답함 가운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게 벌어졌어요.

분명히 얼마전까지 바로 좀 전까지만 해도

제 영적 상태는, 답답했었거든요.

 

그런데 한 순간 그곳에서 제가 툭 뛰쳐나오면서,

마치 안개 낀 곳에 있다가,

그 안개가 걷혀서 그 어떤 고산으로 올라간 느낌이었어요.

 

뭔가 풀어지고, 냉랭했던 나의 마음에 하나님의 불이 임하고

기도가 더 심령속에서부터 올라가 드려지고

 

그 밑 (영역)에 묶여 있을 때는,

그냥 뭔가 불확실하고, 뭔가 답답하고 확신이 없었는데

금방 거기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은혜의 깊은 영역 안으로 들어가니까

갑자기 제 마음의 상태가 바뀌었습니다.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주님, 도와주십시오.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자체가, 그냥 하소연의 기도가 아니라

담대한 믿음의 기도의 영역으로, 그렇게 순식간에 바뀌어 지더라고요.

 

제가 그때 알았습니다. 신앙생활은, 뭔가를 아는 지식이 아니라,

영역이 바뀌는 것이라고요.

 

육신의 소욕, 세상의 영역, 여기에 머물러 있을 때는

우리는 인간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냥 종교의 영역으로 살게 됩니다.

 

물론 이 단계에도 약간의 은혜는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힘이 없고, 약하고, 답답하고, 무기력합니다. 그냥 안타까워서 기도하는 겁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안타까워서 기도할 때가 있죠?

물론 자기가 안타까움으로 기도하지만, 안타까움에서 머무르면,

그 기도는 승리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저 하소연에 불과합니다.

 

잠깐 눈물도 나고 하지만, 다시 돌아가면 금방 환경에 눌려버리는..

정말 너무나 실패하는 신앙생활..

교회를 다니지만, 그런 분들이 대개 많습니다.

 

금요일에 안수도 받으시지만, 여전히 그 수준은,

육신의 영역, 세상의 영역에 종교적인 어떠한 것이 약간의 은혜로 포함되었지

정말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승리하고, 기뻐하고, 두려움을 물리치고

능력안에서 거하는 삶이 그들에게 약합니다.

 

그런데 그 단계에서 깨뜨리고 나가는 겁니다.

주님의 보혈의 능력, 성령의 권능으로

그것을 깨뜨릴 때, 은혜의 영역안으로 들어갑니다. *영역이 바뀝니다.

 

이것은 믿음의 자리입니다.

내 마음 중심안에, 하나님과 그 약속이 다 믿어집니다.

억지로 믿어야지..가 아닙니다. 믿음의 영역안으로 들어갑니다.

 

민수기 6장에, '여호와께서 네게 얼굴을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고

네게 얼굴 빛을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너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며, 지키시기를 원하노라

 

이 축복의 말씀이, 그게 바로 육신의 영역에서,

보혈과 성령으로 뚫고 믿음안으로 들어가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생기고,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가 흐르는 것입니다.

 

그때 주어지는 것이, 자유입니다.

묶임이 풀어집니다.

두려움에 묶여있다가, 왜 두려워합니까?

내가 주체가 되니까 두렵죠. '내가 내 힘으로 이걸 어떻게 하나?‘

 

그런데 뚫고 나가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해결되지 않았던 것들이, 성령안으로 들어갈 때

믿음의 영역안으로 들어갈 때, 갑자기 해결되어 버립니다.

 

왜냐면 주님이 나를 붙잡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에 하나님의 힘이 주어집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이 새 힘은, 하나님의 힘인데

날마다 부어지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이 힘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이 땅을 걸어가도 피곤치 않고,

곤비치 않는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힘이 주어지는데,

이 힘은 성령의 힘인 것입니다.

 

이 힘이 우리에게 있어야, 우리는 이 땅을 승리할 수 있어요.

우리가 다가오는 모든 시험들, 우리 힘으로 못 이깁니다.

지칩니다. 내가 힘을 꽉 줘도 안 됩니다. 그러면 더 힘들어집니다.

 

오직 성령안으로 들어가서, 믿음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날마다 새 힘으로 공급받아질 때

우리는 그 힘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은혜 안에 들어와서도 영역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예를 들어서 이 예배당에 들어 와도

하나님과의 관계적 측면에서 가까이 올 수 있고/ 멀리 올수도 있습니다.


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이 듣고 은혜 안에 있지만

잡념이 드는, 멀리 있는 분이 있고

잡념이 안 들면서 다소 잘 듣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가까이 밀착해서,

정말 어떤 깊은 인격적/영적인 교제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차원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같은 은혜 안에 있어도, 멀리서 좇아가는 사람이 있고

그분은 금방 바깥으로 나갑니다.

세상에 나가면 금방 옷을 갈아입습니다.

이 안에서 의의 옷 입었다가, 금방 다른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그러다가 세상에서 묶이면, 다시 교회에 와서 옷을 갈아입는데

늘 멀리 계시는 겁니다.

좀 가까이 계신 분들은, 잘 놓치지 않죠. 하지만 그래도 다소 약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가까이 있는 사람은,

정말 그 어느 곳에서든지 주님을 24시간 바라보면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듯이


그 분의 깊은 임재 안에, 그분의 더 깊은 마음을 부여받으시면서

성경을 펴도, 기도를 해도, 하나님과 깊은 연합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부여받아,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오늘 본문 막9:28~29절은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산 밑에서 있었던 일이죠.

한 아버지가 귀신들린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특별하게 딴 짓 안 했습니다.

 

제자들은 이전에 귀신을 쫓아낸 축사의 은사가 이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어린아이는, 아홉 제자가 달라붙어서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실망에 빠졌죠.

 

예수님이 내려와보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때 책망하셨습니다.

'이 패역한 세대여,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언제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느냐?'

 

제자들이 주님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제자, 사도들입니다.

 

이 말씀은, '너희 믿음의 영역(수준)이 낮다'는 뜻입니다.

믿음을 떠난 것은 아닙니다. 믿음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를 해결하기에는 너희 믿음의 영역이 너무 낮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주님께서 한 번에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충격 받았습니다.

'우리는 아홉 명이 달려들어도 안 되었는데, 무슨 차이일까?'

굉장히 마음속에 의문이 들어서, 조용히 주님께 와서 질문했습니다.

'우리는 왜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이전에 우리가 기도할 때는, 분명히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었는데,

왜 이번에는 해결이 안 되었습니까?' 질문했을 때,

주님께서 하신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전에 너희들이 부딪혔던 그 수준은, 지금 겪는 수준과는 다르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역의 차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너희가 부딪힌 이 수준은, 비록 어린아이에게 들린 귀신이지만

그 너희의 그 낮은 (믿음의) 영역에서는

천명이 달라붙어도 해결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사람이 많다고 해결되는게 아닙니다.

그것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사람 한 명과,

그 아래에 있는 9999명의 힘을 합쳐도, 그 한 사람을 못 당해 냅니다.

 

지금 본문 상황은,

그 제자들의 평소 믿음의 영역 안에서는 해결 안 됩니다.

그것을 넘어선 한 사람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차원/영역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사람의 믿음을 찾으십니다.

엘리야 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능가하는 믿음의 영역,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그 한 사람의 의인의 기도가,

하늘의 문을 닫기도 하고, 열기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같은 종류와 싸워 이기려면,

너희들이 더 영적으로 나와 가까워야 하고 더 충만해야 되는데,

그것은 기도와 금식 외에는 될 수가 없다.'

 

오늘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것이 현실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기 쉽지 않으실 것입니다.

 

물론 언제나 신앙생활하기 쉬웠던 시대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더 어렵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대하는 것, 여러분의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

20~30년전 분위기와, 지금 영적인 분위기는

지금 이 시대의 ()류를 데적하기에는

예전의 그 수준으로 안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한 20년전 사역할 때의 분위기는, 천막쳐 놓고, 빨간 비로드 천 하나 걸어놓고,

스피커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고물이었지만, 그 정도 분위기에도 사람들이 막 뜨거워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너무 바뀌어버렸습니다.

물론 그런 외적인 환경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좌우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역을 해 보면, 뭔가 아이들도 더 강퍅해 졌고,

 

장년 성도들도 예전에 어느 정도 수준의 말씀만 전해도 아멘 아멘 했지만,

지금은 그런 수준으로 전하면, 팔짱끼십니다. 그리고 속으로 다 판단하십니다.

그리고 아이고 쯧쯧쯧 혀를 차시죠.

 

물론 더 어떤 영적인 수준이 높아져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우리 안에 더 완고해지고, 더 하나님 앞에 부드러워지지 않은,

어떤 이 시대의 교만한 영들...


아이들은, 이 세상에 게임이나 미디어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그 마음이 그 전에는 다소 부드러운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돌처럼 거북이 등가죽처럼 딱딱해진 마음이라,

웬만큼 말씀을 전해도, 웬만큼 예배를 인도해도,

애들이 손을 들지 않고, 고개를 들지 않고, 입을 뻥긋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제가 기타 치고 인도했거든요. 그러면 아이들이 제 인도를 따라 했는데,

기타에 연결된 작은 스피커 하나에도 충분했는데,


지금은 악기 풀 세트로 그렇게 애를 써도,

시험기간에는 고개를 안 들고, 거의 죽은 듯이 있는 아이들이 많다는 말을 들을 때,

안타깝습니다. 이것이 이 세대의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마지막 시대입니다.

사탄은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모든 것을 다 총동원 했습니다.

모든 죄악도 아주 끝까지 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전 세계에 확산할 수 있는 여러 미디어나 인터넷을 통해

이런 것들로 총체적으로 택한 자들도 할 수 만 있으면 넘어뜨리려 하는 것이 이 시대입니다.

 

우리가 낮은 수준/영역에서 신앙생활하면, 백프로 실패합니다.

육신의 단계, 종교의 단계에서는 뭐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그냥 종교적으로 교회 다니는 것은,

그것은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크게 상관 없는 존재들입니다.

 

1만명이 모여도, 육신적인/종교적인 수준에서 1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고 돌아가면,

다 세상적으로 살게 되고, 그 안에 마귀가 꽉 차 있습니다.

천국 가는 신앙생활이 안 됩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들어와 있다고 할지라도,

정말 하나님 앞에 온전히 붙어있지 않는 가운데 있다면,

지금처럼 우리들이 힘든 것입니다.

 

다시 묶이고, 상하고, 다시 좀 나았다가 다시 푹 빠지고.. 눌리고,

오늘 이 말씀처럼, 그 문제를 돌파하는 게 아니라

전전긍긍하는 이러한 힘든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이 시대를 능가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이같은 ()류를 능가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제가 믿는 것은, 세상이 아무리 악해 져도, 하나님의 능력은 그것을 더 능가합니다.

아무리 이 시대의 아이들이 그런 여러 가지 환경 중에 눌려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그것을 능가할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만히 보면,

시대가 어둡고 그러한 여러 가지 영적인 눌림 중에 타락해 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능가할 은혜를 주시고, 그것을 돌파할 사람을 보내주셔서

그의 백성들을 언제나 건져내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악했던 시절이 아합왕의 시절이었습니다.

그 아내 이세벨은 시돈 왕의 딸로서, 북왕국에 바알 선지자 양성 신학교를 세워서

온 나라를 바알 신앙으로 물들였던 역사상 가장 사악한 왕비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십니다.

역사상 가장 능력있는 하나님의 일꾼, 엘리야!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어둠이 깊을 때, 그 백성들이 어둠에 눌리도록 방치하시는게 아니라

정말 믿고 기도한다면, 그 시대를 이길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요즘 제가 드리는 기도 제목입니다.

주님이 자꾸 그런 마음을 제게 주십니다.

 

'하나님, 지금 다음 세대를 생각해도 마음이 눌리고.. 쉽지 않은데,

주님, 이 시대를 능가할 능력을 주십시오.


집회를 해 보면

사람들의 마음 밭이 너무 딱딱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그것을 능가할 힘을 주십시오.

 

엘리야에게 부어주셨던, 그 시대를 돌파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 땅에 부을,

하나님, 이 시대를 능가할 은혜를 부어 주십시오.'

 

이것이 제 기도일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기도제목이길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힘드시죠?

그러나 그냥 '힘들다, 안 된다'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남편, 자녀, 부모님.. 그들이 엄청난 공격 앞에 짓눌려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왜 우리가 기도합니까?

그저 하소연하려고? 그냥 나만 잠깐 회복되려고요?

 

'이 시대, 이상황을 능가할 하나님의 능력을 주십시오.

우리의 신앙이 그 수준까지 나아가게 해 주십시오.'

 

저는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로 더 발돋움해 나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제 이전을 하면 그런 마음이 들어요.

 

'주님, 새로운 예배당 터전에서, 내년 여름은, 강력한 집회가 되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청소년들도 교회 안에서 강력한 집회를 하고, 청년들도 강력한 집회를 하고,

장년들도 강력한 집회를 해서, 하늘의 문이 열리고, 성령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하나님, 이 시대를 능가할 그런 하나님의 용사들이 설 수 있도록,

주님, 그러한 역사를 주십시오.'

 

아직은 부족한 것 같고, 또 공간자체가 쉽지가 않아서

제 안에 자꾸 주춤거리는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역자들과 함께 또 우리 교회 리더십들과 함께 준비해서,

'하나님, 내년에 더 하늘 문이 열리고, 정말 이 시대를 흔들어 깨울 수 있는

엘리야와 같은, 하나님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오늘 주님의 말씀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사도들이 기도 안 했나요?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그 정도 수준의 기도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도에 올인 해라!'

 

여러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전심으로 찾는 자를 원하십니다. 전심!

 

세상을 뒤로 하고,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정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주님은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엘리야가 그와 같은 사람이었어요. 엘리야는, 성경에, 의인의 기도를 드렸던 사람이며,

구약 선지자의 대표가 엘리야입니다.

 

주님이 변화산상에 기도하실 때, 모세와 엘리야가 찾아왔습니다.

굉장히 대표적인 인물인데, 저는 한 때 열왕기상하를 읽으면,

어떤 표적의 숫자나 이런 부분은 엘리사가 더 많아서, 엘리사가 더 큰 종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엘리사보다는 엘리야를 더 중요한 선지자로 부각시키실까요?

가만히 보면, 엘리사는, 엘리야가 이미 어떤 부분을 다 평정한 이후에 사역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엘리사 시대 때는, 바알 신앙이 굉장히 많이 약화되어 있었고,

선지자가 많이 활동했던 시대였는데,

엘리야가 사역했던 시절에는, 완전히 이세벨이 꽉 잡고 있었던 시대인지라,

이것을 거의 엘리야 혼자서 기도로 뚫고, 하늘을 3년 반 닫고, 또 다시 열고,

불이 땅에 떨어지게 했던 역할을 했던 사람이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시대를 뒤집고, 시대를 승리했던 그런 믿음의 기도를 드렸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엘리야를 굉장히 중요시 여기시고, 장차 예수님이 초림하실 때,

엘리야의 심령의 능력을 가진 선지자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셨는데,

세례요한이죠. 그 대표격을 엘리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가 다시 주님 오실 날, 이제 곧 주님 오실 텐데,

영적 마지막 전쟁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사탄은 총공격하는데,

이 시대에, 또다시 엘리야의 심령을 가지고,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평정시키고,

 

정말 하나님의 그 불이 이 땅에 내리게 하고

'바알이 하나님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이시로다!’

 

지금 교인들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처럼 양다리 걸치고 있거든요.

'바알이 하나님이면 바알을 좇고,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좇으라

'여러분들은 왜 양다리 걸치고 있느냐..'

 

이 가운데 정말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하나님이시로다. 예수님만 우리의 주님이시로다'

이렇게 뚫고 나갈 수 있는,

 

어린아이들이, 청소년들이, 청년들이, 장년들이

그러한 주님 오실 날을 준비하는

그러한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고 믿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들이 기도하셔야 됩니다.

그냥 우리 문제 해결, 그냥 내 가족 어떤 문제 해결.. 여기에 매이시면 안 됩니다.

큰 그림을 보셔야 합니다.

 

또 이교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이, 새로운 건축이 일어나는 그런 모든 방향이,

그냥 돈이 얼마 될까, 말까의 수준으로 기도하시면 안 되고,

큰 그림으로, 이 시대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분별하고,

하나님, 이 시대를 능가할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시고,

 

그렇게 기도할 하나님의 기도의 용사들을 세워주시고,

그렇게 헌신된 주님의 일꾼들을 일으켜 주셔서,

이 시대를 깨우고 열방을 깨울, 그런 교회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것이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마음입니다. 함께 기도드립시다.

 

하나님, 우리 안에 갈망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눌리고 탄식하는, 너무나 실패하는

양다리 걸치는, 자유함이 없는 안타까운 마귀에게 묶여 있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 그것을 돌파해내기를 원합니다. 이 시대를 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그러한 능가하는 능력을 부어주시고,

온 맘을 다하여서 주님을 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