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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스펄전의 생애와 설교 P2

LNCK 2016. 9. 3. 14:19

찰스 스펄전의 생애와 설교 P2           1:29         출처보기


서문강 목사님 강의를 녹취, 정리했습니다.

 

 

설교자로서의 스펄전

 

실로 스펄전의 설교 같이 천의 얼굴을 가진 경우가 누가 있을까요?

천의 얼굴이란, 스펄전의 설교가 다루는 범위와 주제가,

아주 광범위하고 다양하다는 뜻입니다.

 

마치 보석이 빛을 수많은 방향으로 반사하듯,

복음의 영광이, 그의 설교를 통해서 드러나는데,

그 주제와 다루는 범위의 다양성과 광범위성에 놀랍다는 경탄을 금할 수 없게 됩니다.

 

스펄전은 1834년에 태어났고, 15세 되던 해에 회심을 경험합니다. 1)

 

그는 어린 유년 시절을, 할아버지 목사님 밑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 할아버지의 서재에, 수많은 17세기 청교도 목회자들의 주옥같은 저서가 꽂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펄전은 아주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의 장서를 스스로 뒤척거리면서

상당한 조기교육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설교자로서의 그의 생애의 시작은, 1851년 그의 나이 불과 17세였습니다.

캠브리지셔Cambridgeshire의 워터비치 Waterbeach 의 소수의 신자들로 구성된 침례교회는

비둘기 사육장으로 쓰이던 작은 건물에 모이고 있었는데,

여기가 스펄전 목회의 출발지였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 1854, 그는 런던의 New Park Street Chapel 교회의 목회자로 초빙됩니다.

20세에 그는 이미 런던의 당시 제일 큰 침례교회에, 청빙을 받았는데,

당시 그 교회는 성도의 숫자가 점점 감소하고 있었습니다.

 

결혼은 1856년에 수산나와 하게 되는데, 총각 때부터 벌써 목회를 한 것입니다.

수산나와 사이에서 쌍둥이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어쨌거나 위터비치의 작은 침례교회에서 3년 가까이 설교하고, 목회한 공로가 인정받은 것이지요.

 

스펄전은 런던 목회 시작 후 5년이 경과한 후

신문으로부터 맹렬한 혹평을 듣기 시작해서, 거의 소천할 때까지 비평이 계속되었는데요,

그의 설교가 너무 맹렬하고, 죄를 지적하고 하니까..

일반 사람들이 싫어하고

또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시기를 많이 받아서이겠죠.

 

스펄전 목사님이 설교를 할 때는, 그 설교를 듣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운집했다는 것입니다.

 

이 시절 스펄전은 늘 교회의 상태와,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바라보며

탄식하며 설교했다고 합니다.   ☞참 하나님의 종의 관심은 회심 / 스펄전   Conversion

  

오늘날과 비교하면, 오늘 시대의 영적 상황은 그때보다 더 뒤떨어진 것 같은데,

오늘날에는 아무도 탄식하며 설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강단 사역은 런던의 New Park Street 교회에서 시작해서,

회중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니까, Exter Hall, Surrey Music Hall로 장소를 자꾸 옮겼다가

 

이때 벌써 1만명 이상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1861년에 Metropolitan Tabernacle를 건물을 지어서 이전합니다.

그는 여기 한 교회에서 38년간 목회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속기록으로 작성되어

매우 빨리 인쇄되어 영국 전역에 반포되어 읽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벌써 스펄전 목사님의 생전에,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해외로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배포된 스펄전의 설교를

자기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면서, 일하다가 쉬는 시간에 꺼내서 읽곤 했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설교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자

스펄전의 설교 모조품들이 런던에서 만들어져 거래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당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으려면,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큰 교회당이었지만,

사람들이 예배 시작 전에 미리 가서 줄을 서는 풍습이, 거기서 벌써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그 거룩한 사역을 마치고

그가 그렇게 사모하던 하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 것은

1892, 그의 나이 58세 때였습니다.

 

스펄전의 목회 마지막 시절에는 <다운 그레이드 논쟁>으로

오래도록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Downgrade Controversy

이 논쟁은 1887년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소천 5년 전 시점이네요.

 

이 논쟁으로 인해, 메트로폴리탄 터버너클 교회가 침례교단에서 떠나게 됩니다.

당시 세계 최대의 개신교회였죠.

 

스펄전을 이단으로 모는 사람도 많았고,

그의 설교에 대해 트집을 잡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시대의 가장 논란이 많은 설교자였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스펄전은, 요양 차 프랑스에 가셨다가

거기서 소천하셨습니다.

 

다운 그레이드 논쟁이란, downgrade 등급을 낮춘다는 말인데요.

스펄전이 제일 먼저 쓴 말입니다.


당시에 과학과 이성적 학문의 발달로, 자유주의 시초가 되는 어떤 학문적 기독교가 유행하자,

스펄전은 '그것이 교회와 복음의 수준을 다운그레이드 시킨다'고 비판한 것이지요.


 시중의 목회자들은, 스펄전의 설교가, 너무 문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을 복음화 시키기 위해서는, 문턱을 낮추어야 된다는 주장인데,

그것은 복음을 훼손하는 것이고, 유사복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스펄전은, 교회가 이런 식으로 교리를 무시하고

성경이 말씀하는 그대로의 복음의 영광을 훼손하기 시작하면,

앞으로 50년 뒤에는, 교회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스펄전이 천국에 가신 다음에

바로 자유주의 신학이 들어와서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하고, 동정녀탄생과 부활을 부인하는 등

이런 자유주의 물결이 들어와서, 서구 교회가 20세기 초에 폭삭 주저앉게 되었습니다.

결국 스펄전이 옳았다는 것이, 나중에야 증명되었습니다.

처음에 어떤 새로운 신학이 유행할 때는, 누가 옳은지 구분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논쟁이 벌어진 겁니다.

       

이런 격렬한 다운그레이드 논쟁가운데,

스펄전은 또한 통풍을 앓았습니다. 그래서 노년에 많은 고통을 받았죠.

 

그러니 그의 설교자로서의 생애는 정확하게 41년이었습니다.

그 중 New Park Street 교회,

Exter Hall, Surrey Music Hall

Metropolitan Tabernacle 교회에서 전했던 설교는, 거의 보존되어 있습니다.

 

1917년에 그의 설교집이 총 63권으로 제작되어 출판되었고,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정리된 그의 설교의 총 편수는 3563편입니다.

 

그의 설교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이, 교회사의 보고입니다.

너무나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

스펄전이 전부 원고를 작성해서 그대로 읽은 것은 아닙니다.

 

그가 설교할 내용을 가지고 강단에서 선포하면,

그 아래에서 속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속기, 녹취록을 출판했던 것입니다.

 

이는 현대교회와 장차 주님 오시기까지 시대의 교회들을 위해서 매우 값진 큰 보화로 남겨져 있습니다.

 

영국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 중 한 사람인 조지 휫필드의 설교가

겨우 75편 밖에 남아있지 않는 것에 비하면,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로이드존스는 휫필드를 가리켜 영국이 낳은 The Greatest Preacher’라고 칭송했습니다.

가장 위대한 설교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설교자 한 사람으로 평했습니다.

 

그 휫필드의 설교 75편이 지평서원에서 번역 출판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지평서원(출판사)에서, 이런 관계의 책들을 많이 출판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의 설교를 기록으로 남기기를 거부했던 휫필드의 처사가,

오늘날 우리 처지에서는 아쉽기만 합니다.

 

휫필드는 설교할 당시에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번갯빛 같은 영적인 광채를 어찌 글로 옮길 수 있겠는가하는 논리에서

자기 설교를, 글로 남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설교할 때 감동이 있는데, 그 감동은 인쇄로 옮겨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실 그런 점이 있지요. 설교집이나 음성 설교.. 둘 다 각각 장단점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갈등할 필요없이, 음성과 인쇄 둘 다 내면 됩니다.

 

그래서 휫필드는, 자기 설교집을 책으로 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을 위해서, 후대를 위해서, 자기 설교집을 남겨놓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 까요!

 

그가 엄청난 설교를 했다는데, 아무리 뒤져도 75편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애석하게도 말입니다.

 

제 서문강 목사는 스펄전의 설교를 약 230편을 번역했습니다.

제가 번역할 때, 너무너무 좋아서, 그렇게 힘들었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설교도 제가 번역했는데,

사람들은 저보고 고생이 얼마나 많으셨어요.’

저는 고생이라뇨? 저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니까 물론 체력이 딸릴 때가 있기는 했지만, 마음고생은 없었습니다.

고역은 아니었습니다. 설교에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게 고역이었다면, 그의 긴 설교를, 단 한 편도 번역 못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린애를 등 뒤에 업고 고생하며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고생하고 있습니까, 고역을 하고 있습니까?

 

그 어머니들은 애를 업고 장사를 하지만, 만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내가 돈 벌어 우리 자녀들 가르치고, 먹일 생각을 하니까,

그 힘든 일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저도 번역하면서, 부족하지만 은혜를 받으니까

그게 고역은 아니었습니다.

 

스펄전은 설교를 위해서 완전한 원고를 작성해서 읽은 것은 아니고

요점이 적혀진 노트를 가지고 올라가서 설교했습니다.

그의 자서전에 보면, 그의 설교를 속기로 받아 적고,

그것을 인쇄하여 반포하는 일에 헌신한, 그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 설교를 하는데, 정확하게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는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 설교 전문을 요즘 영어로 읽으면 45분 가량 됩니다.

 

당시 스펄전이 설교를 회중을 바라보고 했을 때는,

그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것입니다.

 

구글에서 Charles Spurgeon을 검색하면

오늘날의 음성으로 녹음된 그의 설교가 수 백 편 있습니다.

*그의 음성 설교는 남아있지 못하니까요.

 

그의 설교의 풍부한 영성과 찬란함

스펄전의 설교는, 어휘 구사, 인용되는 예화, 수사학적으로도 아주 놀랍습니다.

한 마디로 풍부하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식사를 예로 들면, 일류 뷔페식당과 같이,

한 편의 설교에 그 내용이 아주 풍부한 것입니다.

 

그의 영적인 통찰력과 기지와 지혜와 지식과 전달능력은

너무 탁월하여 우리 입을 못 다물게 됩니다.

 

그가 이런 놀라운 설교를 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요, 은사였습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은사가, 하늘에서 한 번에 던져져서, 스펄전에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은사를,

철저한 개인의 경건생활과 개인적인 성경연구와 묵상과 독서와 탐구의 토양위에서

계발하고 성장시킨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셔서, 그게 자동적으로 탁월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요, 은사임에는 틀림없지만,

또 자신이 거기에 반응해서, 열심히 애를 써야, 그 받은 은사가 탁월하게 발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되려는 사람은, 실천도 물론 해야 하지만,

연구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서재에서 오래도록 앉아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전기 작가인 달리 모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늘 성경에 관한 서적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광범위한 그의 공부의 덕택으로 목회를 시작한지 20년이 채 되지 않아서

그는 Comment and Commentary 라는 책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책을 쓰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책들을 검토해 보았다고 했습니다.”

놀라운 독서력을, 그는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칼빈도 책을 많이 읽는 독서광이었습니다.

칼빈 주석을 보면, 다른 분들의 해석을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칼빈이 종교개혁을 할 때, ‘성경이 옳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된다.’ 주장할 때

기존의 가톨릭 교리체계와 그 신학에 도전해서 이기려고 했을 때,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성경적 논리로 이긴 것입니다. 책을 많이 보고,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톨릭의 학자들과 토론할 때, 교부들의 책을

어느 책, 어느 대목에 있다는 것까지 다 인용해서 얘기하니까,

(그것도 안 보고, 기억에 의해서요.)

그러니까 가톨릭 학자들이 칼빈을 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루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은사를 받아서, 어느 날 갑자기 확 깨달았는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속에서, 그들 자신들도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스펄전의 취미는 중고서적을 찾아서, 수집하는 것이었는데

그의 소장도서가 1만권 이상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시편강해를 보면, 그가 이전 시대와 당대의 하나님의 사람들의 글들에 대해서,

얼마나 겸비한 자세로 관심을 가지고 읽고 참조하였던 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의 설교 속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나열함으로써가 아니고,

그의 설교의 방식이나 접근 자세, 설교 내용들이 아주 진지하게 우러나옵니다.


책은 안 읽으면, 그건 불살라 버려진 것이나, 책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가 책을 안 읽으면.. 그건 재난입니다.

은혜도 받아야 하지만, 공부도 같이 해야 합니다.

진짜 은혜를 받은 사람은, 공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독학이라도 합니다.

 

J. 아담스는 스펄전 설교의 감각의 호소 sense appeal 에 감탄합니다.

스펄전의 설교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에 의한

호소력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설교자들이 은사를 받으면,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은사를

그냥 받은 그대로 있어야 됩니까, 계발해야 됩니까?

답은, 계발해야 됩니다.

그 은사를 활용하고, 자꾸 연구해서 키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

이런 하나님의 은사와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이런 식으로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칼빈주의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주신다는 뜻인데요,

우리가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되, 전폭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하고, 그래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됩니다.

그 말은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이 해 주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역사, 우리에게 소원을 주셔서 행케 하시는 거죠.

 

하나님의 진정 은혜를 받은 사람은, 정말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수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말씀 한 대로,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1:29

 

조나단 에드워즈도 50대에 천국에 가셨습니다. 1703~1758

휫필드도 50대에요. 1714~1770

그렇게 짧은 인생들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게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주어진 기간 동안에, 남들이 수 십년, 수백년 해도 못 이룰 일들을

이루고 하나님께로 가신 것입니다.

받은 은사로, 그걸 더 계발해서 잘 사용하신 결과입니다.

 

스펄전의 설교의 전도 설교적인 특성

그의 모든 설교는, 회중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을 세우신 주님의 소명에 정말 충실했습니다.

 

설교를 왜 해야 되는가를, 스펄전의 설교를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왜 설교를 뭣 때문에 하는가요?

그것은 구원(회심, 변화)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시 그 회중의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집중시켰습니다.

 

또한 그 자리에 처음 나온 자라도,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야 되겠다는 전도자로서의 충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언제나 그의 설교의 중심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님의 성 삼위가 중심을 이루지 않는 설교는,

그에게 한 편도 없습니다.

 

그래서 회중들이 설교를 듣고 나서, 그 생각이 누구에게 집중되게 되어 있는가요?

그 본문 말씀과 함께 성삼위께 집중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는 히브리서 말씀을 즐겨 인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적 성숙에 대해서, 늘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죄와 그 죄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 비참에 대한 강한 경고와,

그리스도의 믿음과 그리스도 안에 주어지는 은혜의 풍성함과 위로로 충만함을 선포했습니다.

 

스펄전의 경고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일례로, “갸롯유다는 지금도 무저갱(밑바닥이 없는 구덩이)에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멸망에, 지금도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영원히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꿈 꾸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때가 있죠.

그 꿈이란 짧은 순간인데도 깜짝 놀라는데, 영원히 지금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지옥에 언저리에 지옥의 문앞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펄전의 설교를 들으면서, 정말 정신이 바짝 들게 되는 거죠.

 

그렇게 경고를 한 다음에,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반드시 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의 은혜의 완전성과

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확실하게 구원 받는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적 위로가 아니라, 복음에서, 하나님께로 온 위로를 준 것입니다.

 

그가 설교 속에서 아주 크게 드러나는 요점은,

어느 본문,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구원의 핵심이 숨어있게 내놓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점은 우리 설교자들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고 견지하기 쉽지 않은 요점이다.

 

그 설교를 듣는 당시의 회중들의 심정의 제일 전면에

무엇이 강하게 각인되었을지,

자문해 보는 것은 오늘날 설교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요건입니다.

 

만약 교회를 떠나 집으로 가는 성도들에게 설문조사를 해 봅니다.

오늘 설교에 가장 무엇이 당신 마음에 각인되었습니까?’

 

참 그 목사님 고생 많이 했네요.’

만약 그렇다면, 그날 설교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목회자 자신을 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읽고나서, 딱 예배 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오늘 설교를 통해서 무엇이 당신의 심정에 각인되었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그리스도 외에 나의 진정한 위로와 구원이 없다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만 나의 영원한 보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말을 하도록, 그 목표를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글로 번역된 스펄전의 설교를 읽으면서

아무 감흥이 없다. 별로 은혜가 없네요라는 반응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한 번만 읽어서 그렇습니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어보시면, 반드시 그의 설교의 진수를 발견하게 되실 것입니다.

 

로이드존스의 설교를 들었던 이들의 한결 같은 고백은,

그 날 설교 본문 말씀이 자기들 속에서 파도치고 역사했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런던에 갔다가, 로이드존스의 설교를 처음 들었던 한국목회자는

(그의 청년 시절에) 설교 끝나고 나서 교회 문을 나서는데,


로이드존스 박사는 키가 작습니다.

그의 키가 작은지/큰지, 그 분이 넥타이가 뭘 맸는지

그분의 연세가 몇인지.. 그런 것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고,

그날 설교 본문이, 그 분의 뇌리속에 파도치며,

자기를 그냥 너무너무 압도하고 사로잡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게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임한 설교이죠.

그 분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심령 속에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스펄전의 설교를, 오늘 우리가 읽어도

그리스도께 우리 마음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놀라운 힘을

그의 설교를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기도/ 주님, 스펄전 목사님을 통해서, 주님께서 드러내 주셨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복음의 영광과 능력을

오늘 우리도 똑같이 드러낼 수 있도록, 주님이여 저희를 도와주소서.

그래서 설교와 설교자의 권위를 회복하고,

이 시대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3에서 계속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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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orn in Kelvedon, Essex, Spurgeon's conversion from Anglicanism came on 6 January 1850, at age 15. on his way to a scheduled appointment, a snow storm forced him to cut short his intended journey and to turn into a Primitive Methodist chapel in Artillery Street, Newtown, Colchester where God opened his heart to the salvation message. The text that moved him was Isaiah 45:22 "Look unto me, and be ye saved, all the ends of the earth, for I am God, and there is none else." Later that year on 4 April 1850, he was admitted to the church at Newmarket.

 

또한 그런데 스펄전 목회에 꼭 알아야 될 사건으로,

그가 Surrey Music Hall에서 설교한 첫 날이라고 합니다.

18571019, 회중 가운데 누군가 불이야!”를 외쳤습니다.

그래서 회중들이 앞다투어 빠져나가다가, 몇 명이 깔려서 죽은 것입니다.

 

이 사고로, 스펄전은 정신적 충격을 받고,

공황장애, 우울증 같은 것을, 그 이후로 계속 앓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