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이 파기되면 큰 손해가 따른다 감찬이(의 아빠)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 맺은 계약(언약)의 파기를 의미한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언약의 땅을 뺏기고, 성전도 헐리고, 자유도 상실되는 등
비참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요즘도 계약을 취소하면 여러 불이익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개인적으로, 나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도저히 이행불가능 상태가 되면
하나님은 성전(우리 몸)을 멸하시며, 땅에서도 토해 내시고, (신앙)자유도 회수하신다.
더욱이 국가적으로 북핵으로 민족적 위기에 빠진 우리는
언약 백성들이 언약 불이행으로 망한 역사를 꼼꼼히 살펴보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하겠다.
▲율법주의가 만연했던 예수님 당시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율법의 형식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여 실천에 옮긴 결과
이스라엘 사회는 소수의 의인과 다수의 죄인으로 양분되었고,
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렇게 되고 보니 서기관-바리새 신앙은 점점 ‘가진 자의 이념’으로 변해 갔다.
시내산 계약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을 해놓은 셈이다.
일 세대 랍비(에스라, 느헤미야 시대)들이 의도했던 바와는 정반대가 되었고,
서서히 진행된 과정에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 대하여 ‘소경된 인도자들’, ‘외식하는 자들’,
‘성경도 하나님도 모르는 자들’이라고 하셨으며,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부르셨다.
더 나아가서 ‘화 있을진저!’(저주를 피할 수 없는 자들),
‘천국 문을 가로막고 저도 못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자들’ 등
신약성경은 이들에 대한 저주와 책망으로 가득 차 있다.(특히 마23장)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는 가장 심한 비난을 이들에게 하셨다.
▲그 보다 더 심한 경고의 말씀 - 성전 파괴
그러나 예수님께서 유대 신앙의 지도자들에게 선포하신 말씀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한 책망의 말씀이 아니다.
그 말씀은 성전 파괴에 관한 말씀인데
공관복음(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예루살렘에)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19:41-44)
▲성전파괴 = 계약(언약) 파괴
이 말씀은 무엇을 선언하시는 것일까?
단순하게 예루살렘 성, 또는 성전이 무너지리라는 예고에 불과한 것일까?
성전의 파괴는 무엇을 말하는가?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할 때 살펴본 바와 같이
성전의 파괴는 계약의 파기를 말한다.
예수님께서 수차에 걸쳐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리라.”고 선언하시는 것은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의 파기를 선언하시는 말씀이다.
계약의 파기는 이스라엘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일인데
다시 그 일이 일어나리라는 예언이 선포되었다.
▲계약 파기 때의 손실
구약에서 살펴볼 때 계약이 파기될 때는
‘계약의 땅 상실’, ‘성전파괴’, ‘자유 상실’이다.
이 3가지는 계약이 파기될 때 일어나는 공식이라고 할 수 있다.
①계약의 땅 상실
계약이 파기될 때에는 먼저 계약의 땅을 상실한다.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가 계약이 파기되어 망할 때도 그러했다.
앗수르와 바벨론에 나라가 망하여 땅을 잃어버렸다.
가나안땅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계약을 지키라고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계약의 땅에서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계약의 땅을 도로 환수하신다.
이에 대하여서는 예언자들이 누누이 설파했던 일이다.
계약이 파기되어 앗수르와 바벨론에 빼앗겼던 땅이
이스라엘에게 다시 주어졌던 것은 계약의 연장이며,
계약을 지킬 기회를 다시 한 번 더 주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5백여 년 동안 재 기회를 주셨던 것이다.
(B.C.515~ A.D.70)
이 사실을 잘 알았던 1세대 랍비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하시딤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초창기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은 말라빠진 형식으로
굳어져 버렸고, 결국에는 본래의 의도와는 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일을 해 놓고도 전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신앙이 지배계급의 논리로 전락한 것이 가장 큰 범죄행위였다.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은
이스라엘과 교회 역사에서 실증된 대표적인 말씀이다.
돈과 권력에 눈이 멀면 분별력을 상실해버린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빠진 함정은 이것이었다.
B.C. 721년과 B.C. 586년에 땅을 잃은 사건에 대하여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길이 없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땅을 잃어버릴 때의 일은, 우리가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이때의 일을 생생하게 직접 목격하고서 기록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계약을 상실할 때 얼마나 비참한 일이 일어나는 지를 똑똑히
보여주시기 위하여 요세푸스라는 사람을 준비해 놓으셨다.
요세푸스는 본래 로마 군대와 맞서서 싸웠던 지략을 겸비한 훌륭한 장수였다.
갈릴리지역의 요타파타 요새에서 로마군대를 맞아 47일 동안 초인적으로
막아냈지만 역부족으로 포로가 되었다.
요세푸스의 용맹에 감동을 받은 로마군 대장 베스파시안의
호의로 살아남은 그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모습을 지켜보고서
「유대 전쟁사」라는 책을 써서 멸망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이 책을 통하여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멸망과정을 읽어보면,(아래)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 사명을 저버리게 되면
얼마나 비참한 심판이 주어지는 가를 알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후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역사와 삶의 현장에서 지옥의 심판을 겪게 된다.
계약이 파기될 때 이스라엘이 당한 고통은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예루살렘 멸망의 도화선 역할을 한 사람들은 ‘열심당원’들이었다.
로마제국은 정치적으로는 식민통치를 했지만, 종교적인 자율권을 보장해 주었다.
사소한 일에 자극을 받은 과격한 열심당원들이 무모하게 로마에 대항하려고하자
온건한 원로들은 극구 만류했지만 극렬분자들을 막지 못하고 말았다.
로마에 대한 저항이 시작되자 팔레스틴은 물론 안디옥, 다메섹, 알렉산드리아
등지에서도 유대인 소탕작전이 전개되어 수없이 떼죽음을 당했다.
유대인의 항거가 조직적으로 전개되자 로마의 네로 황제는 가장 유능한 장군인
베스파시안(Titus Flavius Vespasian)을 보내서 진압하게 했다.
베스파시안은 이스라엘의 변두리 요새들을 점령하면서 예루살렘으로 진입하여
포위작전을 전개했다.
이즈음 베스파시안은 네로가 제거된 후, 로마의 황제로 추대되어 로마로 가고,
그의 아들 티투스(Titus)가 예루살렘 정복의 임무를 맡았다.
로마군은 4개군단 8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굶겨죽이기 작전으로 나갔다.
마침 예루살렘은 유월절 절기 기간이어서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사람들이 운집해있었다. 약 3백여만 명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예루살렘에는 많은 식량이 비축되어 있었지만
열심당원간에 내전이 일어나서 서로 살육전을 벌이다가
자기들 손으로 군량미를 태워버려서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
이제 성안에 갇힌 사람들은 굶어죽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으므로 장례식이라는 것을 치룰 수가 없었다.
매장을 포기하고 시체를 성 밖으로 던지는 것이 장례식이었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이 굶어 죽으므로 이 일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체를 성 밖으로 던지는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시체들은 길거리에 도심 곳곳에 방치되었다.
도처에 시체가 쌓여있었고, 성내는 시체 썩는 냄새로 진동을 했으며,
나중에는 성전 안에도 시체로 가득 찼다.
굶주리다 못해 성벽을 타고 내려가 도망가는 사람들은
포위하고 있는 로마군에 붙들렸다.
간혹 금화를 숨기기 위하여 삼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로마 군사들은 붙들리는 사람마다 모두 배를 갈라서 금화를 뒤져냈다.
성벽으로 던져진 시체가 60여 만 구가 넘었고,
성내에서 죽은 채 내버려진 시체는 부지기수였고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여인들이 자식을 잡아먹는 일이 예사로 벌어졌다.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로마군 대장 티투스조차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여, 저들이 저토록 참혹해진 것은 내 죄가 아니니
나에게 죄를 묻지 마십시오.”라고 부르짖을 정도로 비참하게 죽어갔다.
예루살렘이 망하면서 굶어죽은 숫자가 최소한 1백 십여 만 명이고
포로로 잡힌 사람이 9만 7천명이며,
포로를 선별하는 동안에 굶주림으로 죽은 사람들이 1만 1천여 명이나 되었다.
성이 망하기 전에 요세푸스의 투항 권고를 받아들여
성을 빠져나와 항복하고 살아남은 유대인들도 많이 있었다.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심판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A.D. 70년 8월 6일 예루살렘이 망한 후 나라를 잃고 세계각지로 흩어진
유대인들은 어디에 가든지 박해를 받았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후에
유대인들은 기독교로부터 박해를 받아야 했고,
2천년 동안 늘 쫓겨 다니며 핍박당하는 삶을 살았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에게는 6백여만 명이 떼죽음 당했다.
계약이 파기된 결과는 이런 참극이다.
지옥은 죽은 다음에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앞당겨 경험하는 수도 있다.
신앙의 지도자들이 방향설정을 잘못하면 이런 비극이 일어난다.
(이 글의 저자는 예루살렘 파괴가 바리새-서기관의 율법주의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서 있을까?
하나님의 심판이 코앞에 임박해있지는 않을까?
심각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런 비극을 미리 막을 수 있다.
(예루살렘 성의 봉쇄는 ‘북한 봉쇄’를 자꾸 떠올리게 한다.)
지도자는, 특히 종교 지도자는 때를 분별해야 한다.
지도자가 앞을 내다보는 분별력을 잃으면 그 시대가 파국을 맞이하고
죄 없는 백성들은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스라엘 역사가 그것을 증거 해주는 산 증인이다.
계약이 파기되었을 때 일어나는 첫 번째 결과는 땅을 잃어버린다.
땅만 내주는 것이 아니다. 절대 다수가 비참하게 죽어가야 한다.
②성전 파괴
갈릴리에서 태어나서 서울(예루살렘)에 가 본 일이 없었던 제자들,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에 가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크고 화려한 성전 건물을 보고서는 입이 딱 벌어져서 말했다.
“저 성전의 크고 화려한 돌들을 좀 보십시오. 엄청나게 큰 돌들로 지었네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성전의 파괴를 선언하셨다.
성전의 파괴는 곧 계약의 파기를 말한다.
제1성전인 솔로몬 성전이 바벨론 사람들에게 파괴된 것도
계약의 파기에 의한 것이었다.
포로귀환 이후 다시 세운 유대교 체제가
본래의 시내산 계약과는 반대로 치닫게 되자
예수님은 다시 계약의 파기를 선언하셨고
A.D.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얼마나 크기에 제자들이 그 위용에 놀랐을까?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헤롯왕이 지었다.
헤롯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이두메(에돔)사람이다.
하스몬 왕조의 요한 히르카누스가 B.C.126년 에돔을 정복하고
강제로 모든 에돔인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고 유대교로 개종하도록 했다.
그런데 그 에돔인 가운데서 헤롯이 등장하여 로마를 등에 업고서
하스몬 왕조를 몰아내고 A.D.37년 유대의 분봉왕이 되었다.
하스몬 왕조에서는 왕이 곧 대제사장이었지만
헤롯은 자신이 이두메인이므로 대제사장이 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기 심복 중에서 대제사장을 임명하고,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퇴락한 성전을 다시 짓는 대공사를 시작했다.
B.C. 20년경에 짓기 시작하여 기본 시설들은 10여 년 동안에 마쳤지만
A.D.64년에 가서야 최종적으로 완공했다.
84년 동안 지은 셈이고, 완공된 지 6년 만에 헐리고 말았다.
이 성전을 짓기 위하여 사용된 석재 중에 큰 것은 길이가 12m, 높이가 6m,
넓이가 5.4m였고, 무게가 100여 톤이나 나갔다.
이런 돌들을 어떻게 운반하여 쌓았는지 불가사의로 남아있다.
로마 군인들이 성전을 파괴할 때 이 돌들을 무너뜨리느라고 무진 애를 썼다.
이런 정도의 큰 돌들을 화려하게 조각하여 성전을 지었으니
시골출신 제자들이 보고 당연히 놀랐던 것이다.
유대교 신앙이 왜곡되어지면서
성전은 대제사장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과 사제 귀족들이
치부를 일삼는 야욕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제사장의 직책을 차지하기 위하여 온갖 술수들이 동원되었고,
절기에 순례를 오는 순진한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고가로 전매하는 등의 비리를 일삼았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셨다가 제물로 쓰이는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
동전을 바꾸는 사람들을 향하여 채찍을 휘두르시며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마가11:17)라고
책망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전이 엄청난 규모로 만들어져서
제자들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런 성전을 존속시켜야할 이유가 없었다.
로마사람들을 보내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시 허물어 버리셨다.
③자유 상실
애굽에서, 바벨론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하비루(히브리 노예)들을 해방시켜서
가나안 땅을 주시고 자유롭게 살게 하신 것은 계약을 지키게 하심이었다.
그러나 그 자유로 계약을 지키는 것을 거부하고,
신앙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에 급급해지자 자유를 다시 몰수당하고 말았다.
가나안에서 쫓겨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온 세상에 흩어져서
갖은 고초를 다 겪어야 했다.
그들이 마음 놓고 자유롭게 살아갈 공간은 어디에서도 허락되지 않았다.
계약이 파기될 때 나타나는 현상은 땅과, 성전과 자유가 상실된다는 점이다.
옛 계약 공동체의 2천년 역사에는 이 사건이 두 번 반복되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새 계약 공동체의 교회사 2천년 역사는
어떻게 진행이 되었을까?
또 다시 계약이 파기되는 비극이 들어있지는 않았을까?
계약이 파기되었으면서도 그 사실 조차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에 어두우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계약이 파기된 것보다 더 큰 비극은
계약이 파기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가져야할 역사해석의 관점이 없다보니
세상 사람들이 보는 관점과 별로 다르지 않게 중세와 근대, 현대사를
해석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서는 제 2부, <죄인의 길>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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