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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평가 와 상대평가

LNCK 2019. 12. 26. 19:05

절대평가 와 상대평가                             롬7:24                                출처

 

우리는 어릴 때부터 비교(상대평가)에 익숙해 있다.

뒤지지 않으려고 뒷발꿈치를 들고 있는 어린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교해서 상대평가 한다.

그러나 주님은 절대평가 하신다. 비교하지 않으신다.

 

1.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부자들이 예물을 드리는 것과

가난한 과부가 작은 동전을 드리는 것을 보셨을 때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드렸다고 하셨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 가난한 과부가 다른 사람보다 가장 작게 드렸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은 그렇게 평가하실 수 있었는가?

사람들은 상대평가 했고, 예수님은 절대평가 하셨다.

 

상대평가 방식은, 피라미드식으로 사람의 계층을 나눈다.

그래서 소수의 귀한 사람과(상위 그룹)

대다수의 패배자, 실패자를 만드는 평가방식이다.(하위 그룹)

무엇보다도 사람 자체보다, 그가 이룬 업적 위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절대평가 방식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귀하게 여긴다.

그가 이룬 업적 보다, 사람 자체를 귀하게 평가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가급적 좋게 보고, 칭찬해주려고 하는 평가방식이다.

 

2. 포도원에 일하는 일꾼에게,

아침에 와서 하루 종일 일한 자나

저녁 5시에 와서 한 시간만 일한 자나

동일한 한 데나리온을 품삯으로 받았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 입장에서는 불공평한 대우였고,

한 시간만 일한 사람 입장에서는 은혜로운 대우였다.

여기서도 주님의 절대평가 방식을 볼 수 있다.

 

만약에 예수님이 상대평가 방식으로 인간을 구원하신다면,

예를 들어, "지구 총인구 중 상위 신자 20% 끊어서 천국 입장, 나머지 탈락!"

하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말씀한다. 3:16

절대평가 방식이다.

 

3. 달란트 비유는 주님의 절대평가 방식을 잘 보여 준다.

5달란트 받아서 5달란트 남긴 사람은

2달란트 받아서 2달란트 남긴 사람과

동일한 칭찬을 받았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절대평가 방식으로는 이해가 가능하다.

 

사람은 외모로 보거니와 주님은 마음속을 보신다. 삼상 16:7

외형은 눈에 보이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이지만

마음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래서 주님은 마음을 보시니까 절대평가 하시고

사람은 외모만 보니까 상대평가 하게 된다.

 

4. 어떤 바리새인이 서서 기도할 때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강도나,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나,

간음을 행하는 사람, 그리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립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자신의 가슴을 치며 말했다.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말씀하셨다.

바리새인보다 하나님 앞에서 세리가 더 의롭다 함을 받고 갔다.”

 

바리새인은 자기 의를 상대평가 했다.

세리를 주님 앞에서 자신을 절대평가 했다.

(세리도 자기가 선행을 베푼 점만 골라내서 자랑하며 기도할 수 있었다.

그가 성전에서 겸손히 기도하는 모습만 봐도, 막가파식 죄인은 아닌 것이다.)

 

자기 의, 자기 거룩함을 상대평가해서 스스로 의롭게 여기거나

어떤 우월감을 갖는 것은... 바리새인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바울은 주님 앞에서 자신을 절대평가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나는 죄인 중 괴수로다’  롬7:24

라고 고백했다.

 

5. 성경은 우리 각자를 몸의 지체로 설명하고 있다.

, , , , , 발 등

그것들을 어떻게 서로 상대평가 할 수 있겠는가!

오직 절대평가 방식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절대평가 방식이 더욱 성경적인 것 같다.

 

요즘 한 집 걸러 해외로 조기유학을 보내는 주된 이유는

상대평가 방식에 의해서 중위권 내지 하위권으로 분류된,

그래서 실망하거나 화난 학생과 부모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무시하는 평가방식은 세상적이고

사람을 존중하는 평가방식이 성경적이다.

사람을 존중하는 크리스천이 되자.

 

크리스천이 종종 현실 생활에서 좌절하는 이유는,

자신을 주님 앞에서 절대평가 하지 못하고

자신을 사람 앞에서 상대평가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상대평가 하는 습관이 어려서부터 길러져 왔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그런 평가방식을 절대평가로 바꿔가자.

그럴 때 주님 안에서 주신 풍성한 삶을 누릴 것이다.

 

또한 주변 사람을 바라볼 때 절대평가 방식으로 귀하게 여겨야 한다.

상대평가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을 무시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물론 상대평가 방식이 전부 나쁜 것도 아니다. 좋게 쓰면 좋은 것이다.)

        

*관련글 : 수우미양가에 담긴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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